43년을 소록도에서 살고, 편지 한 장만 남기고 떠난 두 수녀 — 오스트리아 출신 마리안느 스퇴거와 마가렛 피사렉 수녀는 1962년부터 43년간 소록도에서 한센병 환자를 돌봤고, 2005년 '이제 짐이 되고 싶지 않다'는 편지 한 장만 남긴 채 조용히 한국을 떠났습니다.
시계방 다락에 유대인을 숨긴 가족 — 네덜란드의 시계공 코리 텐 붐과 그 가족은 나치 점령기 자기 집에 벽 뒤 은신처를 만들어 유대인 수백 명을 숨겨주다 발각돼 강제수용소로 끌려갔습니다.
나병 환자들과 살다가 결국 같은 병에 걸려 죽은 신부 — 벨기에 출신 다미안 신부는 1873년 하와이 몰로카이섬의 나병 환자 격리 정착지에 자원해 들어가 16년을 함께 살다, 자신도 나병에 걸려 그곳에서 생을 마쳤습니다.
조국과 삶 전부를 바쳤지만, 신은 50년간 아무 말이 없었다 — 마더 테레사는 자신의 조국 국적까지 버리고 인도로 귀화해 평생을 가난한 이들에게 바쳤습니다. 그런데 정작 그 헌신의 대부분을 채운 것은 신을 느끼는 체험이 아니라,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는 50년 가까운 침묵이었습니다.
청바지를 입고 안치된 15세 성인 — 카를로 아쿠티스는 성체기적을 정리한 웹사이트를 만든 15세 소년이었고, 2006년 백혈병으로 사망했습니다. 2025년 9월 7일 시성되어 첫 밀레니얼 세대 성인이 됐습니다.
교회가 19년간 금지했다가 되돌린 어느 수녀의 일기 — 파우스티나 코발스카의 『하느님의 자비』 일기는 1959년 바티칸에 의해 전파가 금지됐고, 1978년 그 금지가 해제됐습니다. 교회가 자기 판단을 뒤집은 실제 기록입니다.
죽기 직전 흉터 없이 사라진 상처 — 오상의 비오 신부 — 이탈리아의 카푸친 작은형제회 신부 비오는 1918년부터 죽을 때까지 50년간 손·발·옆구리에 그리스도의 상처와 같은 오상을 지니고 살았습니다. 여러 의사가 검진했고 조작 의혹도 끈질기게 따라다녔지만, 어느 쪽도 완전히 결말나지 않은 채 2002년 성인으로 선포됐습니다.
원수를 용서하라는 말은 실제로 가능했을까 — 말로는 쉽지만, 자기 아들을 죽인 사람을 양아들로 삼거나 생면부지의 사람 대신 죽겠다고 나선 사람이 실제로 있었습니다. 이 사이트에 이미 실린 네 사람의 이야기를 '값을 치른 사랑'이라는 하나의 축으로 다시 묶었습니다.