믿음은 결국 뇌가 지어낸 이야기일 뿐인가

인간의 뇌는 애매한 상황에서도 '누군가의 의도'를 과도하게 찾아내고, 위로와 공동체가 필요할 때 그 필요를 채워주는 이야기를 특히 잘 받아들입니다. 이 성향이 신 관념을 설명한다면, 신앙은 결국 진화가 남긴 부산물일 뿐일까요?

주제: 난제·반론, 철학 논증, 의심, 의식·죽음

인지과학자 저스틴 배럿은 인간에게 '과잉 행위자 탐지 장치(HADD)'가 있다고 제안했습니다. 수풀이 바스락거릴 때 '바람이겠지'보다 '누가 있나?'로 먼저 반응하는 쪽이 생존에 유리했다는 것입니다 — 잘못 경계해서 손해 볼 게 없지만, 진짜 포식자를 놓치면 죽으니까요. 이 성향이 자연현상 너머에 '의도를 가진 존재'를 상정하는 습관을 남겼고, 그것이 신 관념의 인지적 토대라는 설명입니다.

인류학자 파스칼 보이어는 신 같은 개념이 널리 퍼지는 이유를 '최소반직관성'으로 설명합니다 — 물리법칙을 대부분 따르되 한두 가지만 어기는 존재(예: 사람처럼 생각하지만 몸이 없는 존재)가 완전히 평범하거나 완전히 낯선 개념보다 더 잘 기억되고 전달된다는 것입니다. 여기에 사회학자 에밀 뒤르켐 이후 자주 제기되는 설명이 더해집니다 — 신앙 공동체가 주는 위로·소속감·죽음 앞의 안정감이 그 자체로 신앙을 유지시키는 강력한 유인이라는 것입니다.

다만 정직하게 짚어야 할 게 있습니다. HADD는 30년 가까이 인기 있는 가설이지만, 정작 이를 직접 뒷받침하는 실험적 증거는 놀랄 만큼 빈약하다는 비판이 인지과학 내부에서도 나옵니다. '그럴듯하게 들리는 진화적 이야기'와 '실제로 검증된 메커니즘'은 다른데, 이 구분이 대중적 설명에서 자주 흐려집니다.

설령 이 설명들이 전부 맞다고 해도, 논리적으로는 아무것도 증명하지 못합니다. '어떤 믿음이 왜 생겼는가(기원)'와 '그 믿음이 참인가(진위)'는 다른 질문이기 때문입니다 — 이를 뭉개면 발생론적 오류입니다. 그리고 이 칼은 양쪽 모두를 벱니다. 진화가 신에 대한 믿음의 성향을 남겼다고 해서 신이 없다는 게 증명되지 않는 것처럼, 진화가 회의주의로 기우는 성향을 남겼다 해도 무신론이 참이라는 게 증명되지는 않습니다. 실제로 배럿 자신은 독실한 그리스도교 신자이면서 이 연구를 계속하는 인지과학자이고, 그는 인지과학이 신학적으로 중립적이라고 주장합니다.

일부 철학자(대표적으로 알빈 플란팅가)는 이 발견을 뒤집어 씁니다 — 만약 신이 존재하고 인간이 그를 감지하도록 설계됐다면, '신을 감지하는 인지 성향'이 진화적으로 발견되는 것 자체가 그리 놀랍지 않다는 것입니다. 이 견해에서 인지과학의 발견은 무신론의 증거가 아니라, 신학이 오래전부터 '센수스 디비니타티스(신성 감각)'라 불러온 것의 자연적 메커니즘일 뿐입니다. 물론 이 반론에도 대가는 있습니다 — 같은 인지 성향이 어째서 서로 배타적인 수천 개의 신 관념을 낳았는지는 이 틀만으로는 설명되지 않습니다.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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  • 과잉 행위자 탐지 장치(HADD, 저스틴 배럿) [논쟁 중] — 애매한 상황에서 행위자를 과잉 감지하는 성향이 신 관념의 토대라는 가설입니다.
  • 최소반직관 개념(파스칼 보이어) [논쟁 중] — 물리법칙을 대부분 따르되 한두 가지만 어기는 개념이 가장 잘 기억·전달된다는 설명입니다.
  • HADD를 뒷받침하는 직접 실험 증거의 부재 [확인됨] — 30년 가까이 인기 있는 가설이지만 직접 증거는 빈약하다는 비판이 있습니다.
  • 발생론적 오류 — 기원과 진위는 다른 질문 [확인됨] — 믿음의 기원을 설명해도 그 믿음의 참·거짓은 결정되지 않습니다.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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